장성 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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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장성 서씨(長城徐氏)의 시조 '''서릉'''(徐稜)은 장성현(長城縣) 사람으로 고려 고종 때 모친을 봉양하기 위해 벼슬에도 나아가지 않았다.[1] 모친의 목에 등창이 나서 의원을 청하여 진찰하게 하니 의원이 말하기를, “살아있는 개구리가 아니면 고치기 어렵다.”고 하였다.[1] 서릉이 이르기를, “지금 같은 엄동설한에 살아있는 개구리를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어머니의 병은 분명 고치지 못하겠구나.”라고 하여 소리쳐 울기를 그치지 않자, 의원이 말하기를, “비록 살아 있는 개구리는 없지만, 우선 약을 지어 시험해 봅시다.”라고 하였다.[1] 그리고 나무 밑에서 약을 볶는데, 갑자기 어떤 물건이 나무 위에서 솥 안에 떨어지니 바로 살아 있는 개구리였다.[1] 의원이 이르기를, “당신 효성이 하늘을 감동시켜 하늘이 이를 내려 주었다. 당신 어머니는 반드시 쾌차할 것이오.”라고 하고, 약을 만들어 등창에 붙이자 과연 나았다.[1]
현대에 들어와 일부는 이천 서씨로 합본하여 절효공파라고 하고, 일부는 장성 서씨를 이어가고 있다.[1]
2. 1. 시조 및 유래
장성 서씨(長城徐氏)의 시조 '''서릉'''(徐稜)은 장성현(長城縣) 사람으로 고려 고종 때 모친을 봉양하기 위해 벼슬에도 나아가지 않았다.[1] 모친의 목에 등창이 나서 의원을 청하여 진찰하게 하니 의원이 말하기를, “살아있는 개구리가 아니면 고치기 어렵다.”고 하였다.[1] 서릉이 이르기를, “지금 같은 엄동설한에 살아있는 개구리를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어머니의 병은 분명 고치지 못하겠구나.”라고 하여 소리쳐 울기를 그치지 않자, 의원이 말하기를, “비록 살아 있는 개구리는 없지만, 우선 약을 지어 시험해 봅시다.”라고 하였다.[1] 그리고 나무 밑에서 약을 볶는데, 갑자기 어떤 물건이 나무 위에서 솥 안에 떨어지니 바로 살아 있는 개구리였다.[1] 의원이 이르기를, “당신 효성이 하늘을 감동시켜 하늘이 이를 내려 주었다. 당신 어머니는 반드시 쾌차할 것이오.”라고 하고, 약을 만들어 등창에 붙이자 과연 나았다.[1]현대에 들어와 일부는 이천 서씨로 합본하여 절효공파라고 하고, 일부는 장성 서씨를 이어가고 있다.[1]
2. 2. 이천 서씨와의 관계
서문중의 기록에 따르면, 서씨는 애당초 두 관적이 없었으나 뒤에 8파로 나뉘었으며, 그 중 하나가 장성(長城)이다. 장성 서씨의 선조는 서능이다. 서문중은 모든 서씨가 이천 서씨에서 나왔고, 나머지 7관은 이천의 별파라고 하였다.1742년 이천 서씨 문중에서 간행된 족보인 《임술보》(壬戌譜) 서문에는 장성 서씨를 포함한 여러 서씨들이 서신일을 조상으로 하여 나뉜 것이라고 쓰여 있다. 이천 서씨의 족보 「계미보癸未譜(1763년)」 서문에는 이천 서씨, 달성 서씨, 부여 서씨가 서신일의 후손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3. 분파
서문중(徐文重)이 대구 서씨 보(大丘 徐氏 譜 – 1702년간) 서문에서 서씨(徐氏)는 애당초 두 관적(貫籍)이 없었고 뒤에 8파(이천, 달성, 대구, 장성, 연산, 남평, 부여, 평당, 남양, 당성)로 나뉘었다고 하였다. 그 분파된 이유는 문헌에 증거가 없어 알 수 없으나, 이천 서씨의 선조는 서신일(徐神逸), 대구 서씨의 선조는 서한(徐閈), 달성 서씨의 선조는 서진(徐晋), 장성(長城)의 선조는 서능(徐稜), 연산(連山)의 선조는 서보(徐寶), 남평(南平)의 선조는 서린(徐鱗), 부여 서씨의 선조는 서수손(徐秀孫), 평당(平當)의 선조는 서준방(徐俊邦), 남양 서씨의 선조는 서간(徐趕), 당성 서씨의 선조는 서득부(徐得富)라고 하였다. 모든 서씨(徐氏)가 이천 서씨에서 나왔고 나머지 7관(七貫)은 이천 서씨의 별파라고 하였다.
의성 김씨(義城 金氏) 족보에는 서씨(徐氏)의 선조(先祖)는 기자(箕子)로부터 나왔고, 이천 서씨는 신라말 서신일(徐神逸)과 고려 초 서목(徐穆)의 후손이며, 대구 서씨, 봉성(峯城) 서씨, 남양 서씨, 당성 서씨가 이천에서 나뉘었다고 한다.
1742년 이천 서씨 문중에서 간행된 족보인 《임술보》(壬戌譜) 서문에는 달성 서씨, 대구 서씨, 부여 서씨, 평당(平當) 서씨, 장성(長城) 서씨, 연안(延安) 서씨, 전주 서씨, 남평 서씨, 남양 서씨, 당성 서씨가 모두 서신일(徐神逸)을 조상으로 해서 나뉘었다고 쓰여 있다.
이천 서씨의 족보 「계미보癸未譜(1763년)」 서문에는, 이천 서씨의 선조는 서신일(徐神逸), 부여 서씨의 선조는 온조왕(溫祚), 달성 서씨의 선조는 서한(徐閈)이라고 하였다. 서명응(徐命膺)은 이천 서씨, 달성 서씨, 부여 서씨가 서신일(徐神逸)의 후손이라고 썼다.
4. 본관
장성(長城)은 전라남도 장성군의 지명이다. 본래 백제의 고시이현(古尸伊縣)이었다. 신라 경덕왕이 갑성군(岬城郡)으로 개칭하였고, 고려 때 장성(長城)으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5. 인물
5. 1. 과거 급제자
장성 서씨는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는 없었으나, 무과 급제자 19명, 생원·진사 14명을 배출하였다.[2]
5. 2. 현대 인물
6. 항렬자
장성 서씨는 항렬자를 사용하여 세대 구분을 한다. 26세 정(挺) 현(鉉), 27세 연(衍) 영(泳), 28세 진(震) 동(東), 29세 열(烈) 섭(燮), 30세 재(載) 증(增), 31세 종(鍾) 상(商), 32세 순(淳) 원(源), 33세 식(植) 휴(休), 34세 현(顯) 병(炳), 35세 규(圭) 재(在), 36세 진(鎭) 일(鎰), 37세 수(洙) 연(淵), 38세 상(相) 계(桂), 39세 희(熙) 훈(薰), 40세 요(堯) 경(坰)이다.
7. 인구
1985년에는 1,472가구 6,382명이었으며, 2000년에는 1,540가구 4,832명으로 조사되었다. 2015년에는 10,137명으로 조사되었다.
참조
[1]
역사
《고려사》 권121 열전 권제34 효우(孝友) 서릉
http://db.history.go[...]
[2]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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